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장풍전쟁 (문단 편집) === 국민정부의 펑위샹 체포령 발표 === 장제스와 국민정부는 펑위샹에게 설득 전보를 보내어 그의 반란을 막으려고 했으나 펑위샹은 정부에 대해서 불충한 행동을 취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준비했다. 결국 5월 23일 중앙정치회의 결과에 따라 펑위샹 제명을 결정했고, 5월 24일 국민정부는 펑위샹의 모든 공직과 당적을 박탈하고 체포령을 내리면서 급료지급을 막은 건 펑위샹이라고 선전하였다. ||군벌이 탄생하고 그리고 멸망하는 원인은 그들이 국가, 군대를 사용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 이익을 얻지 못하면 그것을 우려하고 얻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잃는 것을 우려한다. 그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일이 도리어 반역으로 나와 스스로 운명의 종말을 앞당긴다. 군벌은 아낄 바가 못된다. 그러나 장병은 아껴야 한다. 장병은 모두 우리 국가의 기초가 되는 힘이다. 군벌이 시키는 대로 하여 인격이나 생명을 팔고 모든 것을 내던져보았자 악명을 받고 죽으면 가련히 여기는 사람도 없다. 정말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닌가. 본디 이 제2집단군에 속해 있던 장병은 모두 중화민국의 장병이지 펑위샹의 장병이 아니다. 제장병은 펑위샹과 오랫동안 유대관계로 맺어져 있겠지만 그 유대도 혁명이 있어야 비로소 유대이다. 펑위샹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중앙이 전 제2집단군을 차별대우하고 곤궁에 빠져도 원조해 주지 않는다는 따위로 말하여 제장병을 부추겨 중앙에 반항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제장병은 실정을 모르고 있다. 북벌 이후 산동, 하남, 섬서 3개성의 세수입과 평한철로, 농해철로의 수입은 전부 펑위샹의 자유에 맡기고 있다. 게다가 중앙에서는 매월 50만원을 상하이에서 지급했다. 중앙의 재정은 지금 긴박하지만 가능한 만큼의 일은 하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펑위샹은 우한으로부터 1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만일 그에게 장병의 고난을 구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왜 급료를 지급치 않는 따위의 짓을 하겠는가. 그에게는 과연 인간의 마음이 있는지가 정말 의심스럽다.|| || 국민정부의 선전 || 장제스는 주력부대를 하남 서쪽으로 집결시키는 한편, [[허잉친]], 방본인을 타이위안에 파견하여 [[옌시산]]과 제휴하여 펑위샹을 견제하기 위한 장제스-옌시산-장쉐량 3각 동맹을 체결했다. 5월 17일, 장쉐량은 군사비밀회의를 열어 여차하면 [[장쭤린]] 시대의 기반을 회복하기 위한 군사 계획을 수립하였다. 5월 23일, 장쉐량을 비롯한 동북지역의 장령들이 연명으로 중앙옹호를 통전했다. 허나 보경안민 정책에 입각하여 병력 파병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장제스는 옌시산의 차하얼 성을 봉천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봉천군의 파병을 제안했다. 장쉐량은 이에 반색했지만 열하주석 탕위린이 차하얼주석으로 이동하라는 지시에 열하와 차하얼을 모두 지배하게 해달라고 욕심을 부렸고 봉천의 원로 원금개 등이 반대하여 봉천의 파병은 없던 일이 되었다. 어쨌거나 장쉐량은 5월 28일 당국에 충성하며 중앙을 옹호한다는 통전을 다시 보냈지만 역시 군사 지원을 불가능하고 다만 군수품 지원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